'日誌抄'에 해당되는 글 208건

  1. 2018.11.28 덜어내는
  2. 2018.11.21 역시..
  3. 2018.10.08 근황
  4. 2018.05.07 쩜쩜쩜
  5. 2018.05.03 ...
  6. 2018.04.06 지난 겨울
  7. 2018.02.01 요즘 2
  8. 2017.06.09 모기는
  9. 2016.02.08 내가 살았던 집 - 잠실 누나집 2
  10. 2016.02.08 내가 살았던 집 - 프란체스카 하숙집 3
  11. 2015.09.16 해골물 커피 1
  12. 2015.08.08 덥다 더워
  13. 2015.06.25 야~야~야 내나이가 어때서 2
  14. 2015.04.07 자니...? 1
  15. 2014.11.17 편하게 살자
2018. 11. 28. 15:31

덜어내는

연습을 하자.

내 탓이 아니다. 내 탓이라 해도 어쩔건가. 그럴수도 있지.

나를 괴롭히는건 결국 내자신 내마음.

훌훌 벗어버리고 도망치는 연습을 해보자. 길게보자.

2018. 11. 21. 01:46

역시..

잠 못 드는 밤에는 블로그 뻘글이 최고...ㅋㅋ


인스타그램 가입만 하고 눈팅중인데, 프로필에 블로그 링크를 아무생각없이 걸아놨더니 그거 타고 오시는분들이 한두분 있다보다... 부끄럽다..ㅎㅎ


오늘도 역시 속도 안좋고 윗집도 시끄럽고 항생제 때문인지 가슴도 두근거리고 해서 잠을 설치는 중이다. 올해는 이런 밤들이 유독 많다.


지난번 새벽에 글 쓴 이후로 한달반정도 지났는데, 저때는 정말 최악이었었네.. 그 뒤로는 어찌어찌 넘어가고 있다. 모두가 내 발령이 어떻게 날지만 궁금해하고 있다. 그 중 가장 궁금한 1인은 바로 나.


큰 일 없이 잘 넘어가나 싶었는데 지난 목요일, 수능치던날 또 가슴을 콩닥콩닥 두근두근 거리게되는 일을 하나 만나서..  안정제 며칠 먹다가 결국 몸살나서 병원갔더니 코가 누래서 항생제를 주시네.. 이래저래 심장이 고생이 많다..


목요일부터 오늘까지 계속 그 일에만 신경이 곤두서있었는데, 그 중 일요일은 와이프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한 안동 여행(?)이었고, 월요일은 와이프, 엄마와 이런저런 수다를 길게 떨었는데 나는 좋았다..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게, 그분들에게 죄송스럽기도 하지만 정말 큰 위안을 얻게된다.


그런 고마운 사람들을 위해서!! 푹자고 열심히 일해보자. 가보자.

2018. 10. 8. 03:04

근황

저녁을 조금 부실하게 먹은것 같기도하고, 냉장고에서 더이상 있다가는 음식물쓰레기로 버려질 위기에 처한것들이 있고 해서 이것저것 주워먹었더니 영 속이 좋지않다. 아님 낮에 잘 안먹던 차가운 우유를 마셔서 그런가. 속이 불편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


사실 잠이 오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최근 나의 신경을 건드리는 위층 어디선가 들리는 불쾌한 끽끽소리는, 요즘 좀 조용하다 싶더니, 지금 또 들리네.. 새벽 두시에. 맙소사. 회사일로 신경 많이 써도 못자거나, 잠들었다 깨거나 하고. 요즘 먹고있는 항생제 때문인지, 피곤 때문인지, 정신이 멍하면서도 맑은것같은 신기한 체험도 나의 잠을 방해한다.


위층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 때문에, 바로 윗집을 두번이나 방문하기도 했다. 초여름쯤에 갔을땐 아저씨 혼자 계셨고, 추석연휴 마지막날 갔을땐 그집의 거의 모든식구들이 있었는데, 난 공동생활에 적응못하는 신경 예민한 사람쯤으로 취급받고 내려왔다. 예상하긴 했었지만. 아무튼 추석연휴 마지막날 간 이후로 끽 소리는 좀 조용한가 싶었는데, 오늘 또 들리네. 새벽 두시에. 맙소사.


지난주 금요일은 참으로 힘들었다. 우선 회사에서는 대리님이 다른팀으로 발령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렇게 되면 나의 일은 두배 이상으로 늘어나게 될거고.


거기에 더해서 그 전날 처방받은 항생제 때문인지, 어지럽고 메스껍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기분이 정말 안좋았다.


마지막으로, 며칠째 위층 소리때문에 못자고 있었는데, 원인을 알 수 없는 소리라 언제 어떤식으로 들릴지 몰라 집에 있는 내내 그 소리가 들릴까봐 전전긍긍 하고있었다. 물론 밤에 잠들기전에도. 혹 운이 좋아 잠들었다가도 중간에 깨면 또 그소리가 들릴까봐 다시 전전긍긍.


이런것들이 한꺼번에 와버린 금요일은, 그래서 정말 힘들었다. 회사에서 그 소식을 듣고, 약때문에 어지럽고 기분이 안좋은채로, 밤에 자려니 잠이 올 턱이 있나. 그 다음날 서울도 가야되는 일정이었는데. 정말 최악이었다.


둥둥이를 가지고 있는 와이프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 나 왜이렇게 힘들게 사냐고. 정말 하나도 못할것같다고. 오늘밤 잠들지도 못할거같고, 내일 서울도 못갈거같고, 회사도 못다닐것같다고. 앞으로의 일도 자신없을 뿐만 아니라 당장 지금 이 시간도 너무너무 힘들다고.


하지만 그 날 밤 역시 잠들지 못했고, 결국 진정제 하나 먹고 마지막으로 시계를 본게 새벽 네시반이었으니 다섯시쯤 겨우 잠들었으리라. 그 다음날 서울도 일박이일로 어쨌든 다녀는 왔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하고 대범하게 마음먹을때도 있지만, 정말 이 순간을 못넘길것같은 힘든 시간들도 있다. 올해는 그런 순간들이 자주 오는것같은 느낌이다. 언젠간 이 시간들도 다 지나가겠지만, 그러기엔 오늘밤을 보내기에도 너무 벅찬 그런 순간들.


하지만, 어쨌든, 그런 순간들조차도 결국은 다 지나가는거고 내 삶은 계속되고 있다. 이 블로그에 싸지르는것들이 다 힘들다 왜 잠이안오냐 등등 어렵고 우울한 이야기들만 있는데, 글쎄. 일종의 쓰레기통 같은 곳이랄까. 좋을때는 이곳이 잘 생각나지 않지만, 이렇게 불면이 찾아오면 이곳이 생각난다.


이 밤 또한 지나가고, 이 가을,겨울도 지나가겠지. 둥둥이가 우리에게 오겠지. 쑥쑥 자라면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을 주겠지.


하지만, 이런 어려운 순간순간은, 정말 너무 힘들다. 지금 들어가서 눈감으면 잠들수있을까...

2018. 5. 7. 01:47

쩜쩜쩜

잠자리가 편치 않은 통영 스탠포드호텔에서의 밤

무엇을 생각할것인가

1. 그지같은 층간소음으로 나의 잠이 방해받는건 억울하다

2. 낸 돈이 얼만데

3. 이까지 운전해서 왔고 다시 돌아가야한다.


4. 지금 와이프도 자고 있는 상황에서 방을 바꿀수도 없고, 나만 견디면 된다

5. 위층 사람도 언젠가는 자겠지

6. 예민햔건 내 의지는 아니지만 결국은 나만 손해다


7. 그래도 아내는 잘 자고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8. 기념일에 떠난 여행인데 계속 내 기분을 살피게 만들어 미안하다.

9. 지금 걱정한다고 해결되는건 아니지만 내 실수로 잘못된 회사일로 연휴 내내 몹시 괴롭다



0. 이렇게 지내온 1년.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한다.

2018. 5. 3. 13:29

...

피쉬테일 현상이란걸 보았다

운전중 작은 휘청임이 큰 휘청임으로 바뀌는 그런 상황


사람도 어쩌다 "몰리는" 순간이 있다

어느순간 불쑥 나타나 모든걸 집어삼켜버리는.


한번 몰리면 빠져나오기 전까지는 몰렸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그리고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내 의지와 상관없이 끝나거나 그냥 시간의 힘으로 끝나거나.


내가 나를 몰아넣는 순간도 많겠지. 미리걱정하거나 크게 걱정하거나. 최악의 순간올 미리 걱정하거나.


나를 몰아넣지 말자.

다짐은 해보지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하면 코끼리만 생각나듯이 쉽진 않겠지



앞서 말한 피쉬테일을 벗어나는 방법은, 브레이크를 밟는것이 아니라 가속을 하는것이라한다

휘청휘청 거리지만 엑셀을 밟을수있는 용기.


용기를 가지자

2018. 4. 6. 00:29

지난 겨울

11월 29일 - 상호선배와 불로동 고분군에서 잠깐 만남. 연말 인사철이라 발령관련해서 우종대리랑도 잠깐 통화했다. 이날 아빠의 머리 통증이 시작됐다고 한다.

11월 30일 - 결과적으로 보면 팀 해체 전날 기가막히게 마지막 회식을 했다. 형직선배 늦게 대구오셔서 범어동에 있는 좋은 일식집에서 1차. 복진면에서 2차. 택시 기다리는데 엄청 추웠다. 이때부터 한파 시작이었던듯.

12월 1일 - 팀장님이 다이어리 속지를 사달라하셔서 시내 교보문고 감. 맥도날드 카카오 프렌즈 인형 한정판 나오는 날이라 1층 맥도날드 들러서 세트 구매하고, 속지사서 가는데 팀장님 부산팀으로 발령남. 홍대형이랑 어찌된 상황인지 통화도 했었다.

이날 김장하는 날이어서 퇴근해서 와이프와 같이 칠곡 방문. 저녁때 가니 김장은 이미 끝나있었고 저녁먹을 준비하고있었다. 아빠가 계속 누워계셨다. 도와주러 오신 외숙모를 셋째누나가 집까지 태워다 주고 왔다고 했다. 아빠는 저녁식사 하시고 매천공원 산책나가신다고 하셨고 우리도 곧 집으로 돌아옴.

12월 2일 - 뭐했는지 기억은 없는데 카드 내역보니 동네 병원과 약국 갔었다. 갑자기 추워져서 감기가 왔었겠지.

12월 3일 - 와이프 시내에서 친구들 약속있어서 갔다가 오후에 엑스코에서 하는 크리스마스 페어 가보기로 했다. 난 와이프 약속 끝나는 시간 맞춰서 엑스코로 바로 버스타고 감. 크리스마스 페어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먹고, 슬기로운 감빵생활 재방송 보고있었다. 전화기가 주머니에 없었는지, TV 한참 보다가 전화기 봤는데 큰누나 부재중 전화 1통과 엄마가 전화달라는 문자 한통이 들어와 있었다. 그거 보는 순간 금요일에 아빠 머리아프다고 한게 생각나며 병원이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다. 전화해보니 아빠가 병원 응급실에 가있다고 빨리오라고 했다.

옷입고 이닦고 준비하고 나가는데 그때부터 엄청 울었다. 내가 운전해도 되는지 와이프가 걱정했지만 일단 내가 차몰고 카톨릭대학병원으로 갔다. 2년전쯤 아빠가 통풍때문에 같은병원 응급실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일요일이었다. 그때는 처음이라 겁났고, 이번엔 정말 큰일인것 같아 정말 두려웠다. 대기실에 가니 막내 자형이 있었고, 보호자가 왔으니 잠깐 응급실 문 열어달라고 해서 들어갔더니 엄마랑 큰누나, 셋째누나가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있었다. 처음에 아빠를 못찾았는데, 아빠는 그때 이미 머리를 다 밀고 누워계셨다. 그때는 아빠 정신이 또렷한 편이었다. 키와 몸무게를 물으니 다 대답하셨다. 아빠랑 인사하고 의사 설명 들으러 가보니 뇌 수술인데, 뇌는 신체중에 가장 깨끗한 기관이라 수술중 감염의 우려가 있으며.. 등등의 이야기를 하고 보호자 싸인을 받았다. 절차 다 끝나고 아빠가 응급실 문 지나 수술실로 향하는데, 셋째누나가 엄청 울었고 나랑 엄마랑 큰누나는 잘하고 오시라면서 울지는 않았던것같다.

스텔라관 5층 중앙수술실에 10시쯤 들어가셨는데, 그때까지 가족들 모두 식사 안한 상황이라 식사하고 오시라고 하고 나는 와이프와 수술실 앞에서 기다렸다. 근처에서 식사 하고 오셨는데, 막내누나네는 보민이도 있고 출근문제도 있어서 집에 가기로 하고 내가 누나와 와이프를 태우고 집에 데려다주러 나갔다. 누나 집 내려주고 우리집 와서 담요와 생강차와 이것저것 준비해서 나는 다시 병원으로 갔다. 엄마 큰누나 큰자형 나 이렇게 네명이서 밤새 수술실 앞에서 기다렸다. 그 밤이 정말 추웠다. 내가 집, 차에 있던 담요들 다 가지고 가서 덮었는데도 정말 추웠다. 난 수술이 몇시간 걸리는지도 모르고 기다리고 있어서 곧 끝나나 곧 끝나나 했는데 결국 8시간 지나서 새벽 6시쯤 아빠가 나오셨다. 난 나오면서 의사가 뭐라고 하는말 있으면 녹음하려고 녹음기를 켜고 따라갔다. 엘리베이터가 엇갈려서 아빠는 다른쪽으로 가고 가족들은 중환자실 앞으로 가고 있었는데, 녹음 들어보니 엑스레이 찍고 중환자실로 간다는것 같았다. 그래서 나혼자 엑스레이 찍는곳으로 가보니 아빠가 엑스레이 찍고 있었다. 엑스레이 찍는 곳에 뉴스가 나오고 있었는데 속보라며 무슨 배가 침몰했다고 나오고 있었다. 엑스레이 찍고 나오시는데.. 의식은 없으시고 웃옷은 벗겨진채로 이불만 덮고 침대에 누워서 이동하는데.. 그 새벽은 왜그렇게 춥던지.. 이불만 덮고있는 아빠가 너무너무 추워보였다. 그리고 의식 없는 와중에 기침을 너무 고통스럽게 하시는 모습이 요즘도 문득문득 떠오른다. 다른 가족들은 못보고 나만 봤던 장면이라 더욱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것같다.

 

12월 4일 - 새벽에 수술실에서 나와 중환자실 들어가셨다. 중환자실이라는데가 면회시간이 정해져 있다는걸 그때 처음 알았다. 우선 오전에는 내가 병원에 있기로 하고 엄마는 집에 잠깐가고 큰누나는 출근했다. 나는 팀장님이랑 선근파트장님께 말씀드리고 휴가 내야되겠다고 하고, 중환자실 보호자 대기실에 누워있었는데, 시간이 정말 안갔다. 그 와중에 내가 경남으로 가니 부산으로 가니 하는 발령 소문들이 톡으로 막 오는데, 내 발령 소문인데도 남일처럼 느꼈던것같다. 11시 30분에 교직원 식당이 문연다고 해서 거기서 점심먹을려고 기다리는데 시간이 정말 안갔다. 가장 길었던 오전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겨우 11시 30분이 되어서 밥먹고 다시 대기실로 돌아오니 12시에 방송으로 주님의 기도가 나왔다. 기도를 듣는데 다시 눈물이 나왔다. 성당 다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외우고 있다는 자체가 그 순간에는 엄청난 위안이 되었다.

 

저날부터 중환자실에 2주정도 계시다가 일반병실로 옮기셔서 거기서도 2주정도 계시다가 퇴원하셨다. 큰 수술이었고 아빠 연세도 있으신데 정말 잘 이겨내셨다. 아마 내가 앞으로 살아가며 힘든 순간이 올때마다 그렇게 잘 이겨내신 아빠를 생각하며 나도 할 수 있다고 힘을 얻게되지 않을까. 중환자실 계신동안 거의 매일 아침에 와이프랑 같이 병원가서 면회하고 와이프 태워주고 나도 출근하는 생활을 했다. 인아도 고생 정말 많이 했다. 그 마음도 평생 갚아가며 살아가야겠지.

 

퇴원하신 직후 아빠는 다른사람이 된것처럼 순한 사람이 되었다. 한동안 기억이 오락가락 하셨다. 퇴원하시고 첫 목욕탕을 같이갔었는데 70세 이상은 할인이 된다하여 아빠가 70세 넘었다고 하니, 카운터 아저씨가 아빠한테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지 물었다. 그러자 아빠는 너무 태연하게 66세라고 대답하셔서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든 에피소드도 있다. 그렇게 한동안은 본인 나이도, 아들 회사도 잘 기억 못하셨는데 그와중에 인아의 직업은 기가막히게 기억을 하고 계셨다.

 

그렇게 춥던 겨울도 지나가고 봄이 왔다. 이제 아빠는 거의 회복을 다 하신것 같은데, 통풍때문에 계속 고생하고 계신다. 아빠를 돌봐야 하는 엄마도 물론 고생하고 계시고.

 

사는게 뭔지, 늙는게 뭔지, 또 죽는건 뭔지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고, 아빠곁을 지키는 엄마를 보며 부부가 함께 살아간다는건 무엇인가.. 이런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다. 두분 함께 살아오시면서 좋은일, 나쁜일 다 같이 겪었고, 사랑하는 만큼 미워하는 마음도 많이 있었을텐데 결국 곁을 지키는건 부부구나 하는 생각.

 

봄의 새싹들을 보며, 자연의 순환을 보며, 아빠도 다시 회복하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지금까지 잘해오신만큼 앞으로도 잘 이겨내시리라. 아빠,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오래오래 저희와 함께 해주세요.

2018. 2. 1. 23:34

요즘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일이 많다...ㅋㅋ

 

 

몸이 망가지고 있는 느낌.

 

내가 하고싶고 해왔던 일들을 못하게 되는것에 대한 짜증.

 

이를테면, 커피 한잔 마시고 싶어도 감기약 땜에 안좋을까봐 못마시고

 

영화 보러 가서도 몸살기운때문에 취소를 생각하고

 

 

 

이것 또한 지나가겠지만,

 

내가 바보여서 못 뛰어내리는건지.

 

나만 별나서 못참는건지.

 

 

 

 

아들노릇, 부하노릇, 남편노릇하기 쉽지 않네요.

2017. 6. 9. 01:21

모기는

어디서 들어와서 이 밤 날 괴롭히는가

내 눈으로 시체를(...) 보진 못했지만 약 삼십분정도 소리가 안들리니.. 죽었거나 나갔거나 한거겠지

괴롭도다.

여름이 이렇게 훅 다가오는구나

자고있는데 불켜서 미안ㅠ



2016. 2. 8. 02:11

내가 살았던 집 - 잠실 누나집

2009년부터 2010년 5월 15일까지 살았던 잠실 엘스.

 

누나가 민성이 낳고 육아휴직하는 기간에 자형이랑 같이 살기위해 구한 집이 엘스였다.

 

새 아파트였는데, 여러모로 새 아파트, 잠실 아파트, 대단지 아파트의 위엄(?)이 있었다.

 

 

입주 시작된지 얼마 안될때 들어가서, 엘리베이터에는 한참동안 보호막이 덧대어져 있었고

 

새집 냄새가 한동안 많이 났다.

 

 

처음엔 거실에 15인치?정도되는 TV밖에 없었는데, 일년정도 있다가 결국 큰 TV 구입ㅋ

 

 

재은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는 시기라 내가 예비소집? 막 그런것도 데려가고 했는데, 그때 아버님 소리 들었었다ㅋ(당시 24세)

 

어쩌다보니 조석연과 같은 아파트, 한석이는 옆아파트에 살아서, 한번씩 같이 학교 가거나 학교에서 오거나 했다.

 

 

처음엔 지하철 타고 다녔는데, 730버스(지금은 740) 알게 된 이후로는 버스도 많이 타고 다녔다. 버스가 좋았던게 성모병원 지나서 한강중학교까지 꽤 먼거리를 한번에 달렸는데(고가도로와 반포대교 때문에), 버스타고 반포대교 건널때 뭔가 서울사는게 이런거구나 라고 느꼈던 기억. 근데 언젠가 부터는 잠수교로 다니기 시작해서 시무룩.

 

 

초기에 한번씩 올림픽 수영장 가곤 햇었는데, 레인이 (아마도) 50m여서 후덜덜 했었다.

 

아파트 바로옆에 잠실 야구장이었지만 한번도 안가봄ㅋ 지금까지도ㅋ

 

 

대신 잠실 롯데백화점이나 코엑스는 가까워서 한번씩 갔었다.

 

 

누나와, 아이들과 사는게 편하고 좋은것도 있었지만 스트레스 받는것도 많아서, 여름방학 어느 날에는 대구로 도망친적도 있었다. 그때 좀 울었는데. 아마 블로그에 그 내용 있으리라.

 

 

뭐니뭐니해도 잠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건 세번에 걸친 하우스데이였는데ㅋ 누나네가 집을 비운날 애들 집으로 초대해서 음식도 해먹고 한강도 놀러가고 밤새 놀기도 하고 그랬다. 조석연, 김동혁 등등 내가 발굴(?)했다.. 막이래ㅋㅋ

 

 

한번씩 저녁먹고 할일없을때는 새마을시장이랑 석촌동, 아시안게임 선수촌 아파트쪽으로 막 산책나가고 했었는데.

 

 

2009년 2학기 부터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거의 매일 저녁을 먹고 들어갔다.

 

그러다 슬슬 독립을 꿈꾸었고, 2010년 5월 16일 학교앞 자취방으로 다시 이사!

2016. 2. 8. 01:52

내가 살았던 집 - 프란체스카 하숙집

군 제대 이후 한학기동안 머물렀던 하숙집.

 

위치는 괜찮았다. 남문 패밀리마트랑 엄청가까웠고. 하숙집 보러다닐때 들어갔던 가장 첫번째 집을 골랐던것 같기도.

 

건물 주인인지는 모르겠으나, 암튼 뭔가 특별한(..) 할머니가 하는 하숙집이었다. 할머니는 지하에 사시고, 2층부터 4층까지 있었던걸로 기억.

 

뭔가 기괴한 일들이 많아서 '안녕, 프란체스카'에 나오는 그런 분위기 같다고 느껴 프란체스카 하숙집이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건, 주방에 쥐가 있었다(.........)

 

나는 거의 쥐를 포비아 수준으로 싫어하는데, 생각해보면 내 방 바로 옆이었던 주방에 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한학기 동안 지냈다는건 기적같은 일.

 

밤에 한번씩 찍찍하는 쥐소리가 들렸고..

 

어느날은 할머니가 쥐 잡는다고 주방에서 막 주무시고 그랬다.

 

쥐가 있는 주방에서 만든 음식들을 참 잘먹고 다녔다(...)

 

 

하루는 예전에 하숙했다는 일본인 여자가 놀러왔었는데,

 

할머니랑 이야기 하면서 '내가 그때 방이 없어서 겨울(아마도)에 베란다에서 재우기도 했다'는 맥락의 말을 했는데

 

아니 말도 잘 안통하는 외국인을 베란다에서 재웠다고...?? 해서 충격과 공포.

 

근데 그 일본인은 좋았던 기억이 있으니 다시 찾아왔겠지.. 이건 정확히 기억 나지 않지만 대충 저런 느낌이었음.

 

 

사고 몇번 안 입은 흰색 면바지가 빨래하면서 없어져서 할머니가 2만원을 주셨다.

 

화장실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 샤워할때 조금 불안했던것 같기도.

 

 

할머니가 하숙생 한명을 '마카야'라고 불렀는데, 진짜 이름이 뭐였을지는 아직도 궁금.

 

이름이 '마카', '막하', '막화', '막콰'.. 그 어떤것도 다 이상하다.

 

 

(아마도) 월요일마다 삼겹살을 구워주셨는데, 삼겹살 구울때 나오는 기름을 안버리고 모아두셨다가 그걸로 계란 후라이 하는것보고 식겁.(하지만 잘먹었다ㅋㅋ)

 

출처를 알수없는 유통기한이 간당간당한 매일우유와 편의점 샌드위치가 가끔씩 나오곤 했었다.

 

 

어느날 밤에는 할머니가, 역시 출처를 알수없는 치킨을 구해오셨는데

 

하숙생 몇명이랑 삼각형 모양이라고 기억되는 방에 앉아서 먹었다.

 

할머니는 닭 뼈를 강아지 준다고 모았는데, 내 상식과 지식으로 개에게 닭뼈를 먹이면 안된다고 생각해서 좀 의아했고,

 

무엇보다 기억나는건 그날 밤에 할머니랑 하숙생들이랑 했던 이야기 중에는 그 당시 당선됐던 오바마와 미국 정치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는 점이다ㅋㅋㅋ

 

할머니가 오바↗마↗라고 조금 특이하게 발음했던것 때문에 기억난다.

 

 

 

방도 넓은편이었고 창문도 크고 햇볕도 잘들어오긴 했는데, 창문이 골목쪽으로 나있어서 한번씩 취객들의 소란이나 오토바이 소리가 요란했었다.

 

 

암튼 지금 생각해보면 알수없는 일들이 많았었던 그곳에서 복학 첫학기를 보내고, 나는 잠실 누나집으로 이사를 갔다.

2015. 9. 16. 01:42

해골물 커피

오후에는 커피를 잘 안마시는편인데

오늘은 굳이 걸어가서 라떼를 하나 마셨다


잠들기전 "오후에 커피를 마셨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그 생각만으로 잠이 안오는데

오늘은 자기전에 그 생각이 나는것이다(...)


이건 뭔가 원효대사 해골물같은건가...ㅋㅋ

커피를 마신 사실은 변하지 않는건데

날 불면에 빠뜨리는건 카페인인가 내 마음인가

어떤날은 쿨쿨자고 어떤날은 날카로워지고



잠은 안오는데

최근 라디오에서 다시들은 원효대사 해골물 이야기가 너무너무 인상적이라

뭐라도 연결시키고 싶어서 급하게 남긴다ㅋㅋ


변하지 않는 본질을 가지고 어떻게 받아들일것이냐

껍데기만 바꾸면 본질도 바뀌는 것일까

썩은 해골물을 누군가 표주박에 담아두었다면?





아.. 자고싶다 자고싶어ㅠㅠ

2015. 8. 8. 13:47

덥다 더워

대프리카의 더위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올해는 유난히도, 더 집요하게 덥네요..



낮에 더운거야 그렇다 쳐도


밤에도 기온이 안떨어지니..


눈 떠있는 시간 = 선풍기, 에어컨을 켜고 있는 시간입니다.


머리도 아프고


잠도 안오고




모든것이 바싹바싹 메말라가는 느낌



더위, 너떠문이야.

2015. 6. 25. 00:20

야~야~야 내나이가 어때서

피곤에 나이가 있나요(...)


일주일 피곤함의 극치라는 수요일 저녁에


나는 왜 안자고 이러고 있는건가...



정말 말도 안되게 갑자기 여기 들어와서 제가 싸질러놓은 똥들을 구경했습니다.


20대 후반의 저는 정말 멍청하게 살았군요.


멍청한건 여전하겠지만, 그걸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건 단 하나, 사랑하는 제 여자친구 때문일겁니다.


저를 이만큼이라도 똑바로 걸어가게 해주고 있습니다.



너무 익숙해서 너무 편안하지만 너무 불안한 날들입니다.


회사생활도 나사가 빠진듯이 시간만 때우고 있고


여자친구에게는 익숙함이란 이름아래 점점 편하게만 대하고 있고


무엇하나 뚜렷하게 해나가는 것이 없네요. 아, 그나마 운동은 좀 하고있어서


역대 최고의 몸무게를 자랑하는 중입니다.



늘 긴장하고 걱정하는건 못할짓이지만


일을 안하려고, 대충하려고 잔머리 굴리는것도 못할짓이네요.


일을 안하려고 고민하는 시간에 일을 해버리는게 낫겠다는걸, 다시한번 느끼는 깊은밤입니다.



곧 어떤것이 무너질지도 몰라요.


무너지면 너무너무 괴롭다는걸, 이제는 조금 아는 나이가 되었기때문에.


다시한번 다잡아 봅니다. 제 자신을.




맛집이든, 메르스든, 어떠한 정보도


'진짜'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는데


막상 제자신은 그럴듯하게만 포장하면서 살아가다니요.




'진짜'를 찾아서,


단단하게, 튼튼하게, 성실하게.

2015. 4. 7. 00:23

자니...?

한동안 꽤 잘잤었는데 요며칠 불면이 슬쩍 찾아오더니 오늘도....

이러다 또 잠은 들겠지만... 잠들때까지의 그 시간들은 언제나 낯설고 괴롭다

다행히도 그대는 아주 잘자고있는듯해서 기쁨



아 근데 이놈의 쿼티자판은 도통 손에 익지가 않네...................

2014. 11. 17. 07:30

편하게 살자

내가 모든걸 안고 가아된다는 생각 나만 잘났다는 생각 버리고

쉽게 가자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오셨지만 결국 환영받지 못하고있다.

그토록 도망치고 싶었던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한발짝도 못벗어난 지금.

쉽게 가자.

뭐 대단한거 한다고 내몸 상해가며 욕 들어가며 소중한것들과 멀어지며 살고있나

짜증내지말고 투덜대지말고 쉽게가자





변해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