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12. 00:00

쩜쩜쩜.

살면서 처음으로, '도피'를 했다.

이때까지는 도피하는척만 했다면 이번엔 정말 도피였다.



이렇게 일찍 대구에 올 생각은 없었다.

좀 힘들더라도, 좀 참고 있다가, 다음주에 유식이한테 수영 넘겨주고, 튜터링도 끝내고, 엠티도 갔다가, 대구에 올 생각이었다.

근데 어제 오후부터, 참을수가 없었다.

도저히 거기에선 일분도 더 있지 못할것같은 생각.

좀 머물만한 친구집이 없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리고 참고 있다가 다음주에 가야겠다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리고 있다 오후에 조카가 학원에서 돌아오면 다 같이 마트가서 신발도 바꾸고 저녁도 먹고 들어오겠다는 약속도 지켜야 했지만

결국 나는 대구행 버스 시간을 검색하고 있었고

누나에게 말하지 않은채

조카 학원데려다주고 도서관에 갔다온다는 말만 남기고

대구갈때면 늘 들고가던 노트북도, 여벌의 옷도, 아무것도 챙기지 않고 서둘러 집을 나왔다.

집을 나와서 걷다보니 생각이 구체화 되었다.

아까 버스 시간을 보니 오후4시에 차가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시계를 보니 세시 삼십분이었다.

빨리 가면 탈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느리게 걷는 조카를 재촉해 빨리 학원에 데려다 준다음

(나는 참 나쁜 외삼촌이다...... 저녁엔 같이 짜장면 먹으러 가기로 해놓고선...................)

막 뛰었다.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상가 5층에서 지하1층까지.

지하철역에서도 막 뛰었다.

승강장으로 내려가자 문이 막 열리는 지하철이 있었고 바로 탔다.

강변역에 내려서 표를 끊고 버스에 타서

누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대구가겠다고.

문자를 볼지 안볼지에 대한 불안함은 있었지만 도저히 누나의 목소리를 들을순 없었다.

누나의 답장이나, 전화가 오길 바랬다. 그래야 맘이 조금이라도 편할것같아서

하지만 차가 출발하고 삼십분동안 정신없이 잤다. 피곤했다. 몸도 마음도.

버스 탄지 한시간쯤 지날때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갔다오라고.






밤에 엄마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문자를 보냈을 그 시간쯤에,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내가 갑자기 말도없이, 노트북도 안가지고 나가서, 대구가버렸다고.

누나가 울었단다.

가슴이 정말 아팠다.

조금이라도 편해질려고 도피했는데 전혀 편하지 않았다.

누나에 대한 미안함과, 또 그동안 나름 힘들었던것과, 이런것들이 복합적으로 겹치면서

오랜만에.......






대구온지 만 하루가 지났지만, 아직도 마음이 무겁다.

혼자서 두 아이들과 씨름하고 있을 누나를 생각하니.




난 항상, 어떤 일이든지, 그 당시엔 최선이었다고, 생각하고, 나를 합리화 시키는데,

이번 일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도피.


마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