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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4.06 지난 겨울
2018. 4. 6. 00:29

지난 겨울

11월 29일 - 상호선배와 불로동 고분군에서 잠깐 만남. 연말 인사철이라 발령관련해서 우종대리랑도 잠깐 통화했다. 이날 아빠의 머리 통증이 시작됐다고 한다.

11월 30일 - 결과적으로 보면 팀 해체 전날 기가막히게 마지막 회식을 했다. 형직선배 늦게 대구오셔서 범어동에 있는 좋은 일식집에서 1차. 복진면에서 2차. 택시 기다리는데 엄청 추웠다. 이때부터 한파 시작이었던듯.

12월 1일 - 팀장님이 다이어리 속지를 사달라하셔서 시내 교보문고 감. 맥도날드 카카오 프렌즈 인형 한정판 나오는 날이라 1층 맥도날드 들러서 세트 구매하고, 속지사서 가는데 팀장님 부산팀으로 발령남. 홍대형이랑 어찌된 상황인지 통화도 했었다.

이날 김장하는 날이어서 퇴근해서 와이프와 같이 칠곡 방문. 저녁때 가니 김장은 이미 끝나있었고 저녁먹을 준비하고있었다. 아빠가 계속 누워계셨다. 도와주러 오신 외숙모를 셋째누나가 집까지 태워다 주고 왔다고 했다. 아빠는 저녁식사 하시고 매천공원 산책나가신다고 하셨고 우리도 곧 집으로 돌아옴.

12월 2일 - 뭐했는지 기억은 없는데 카드 내역보니 동네 병원과 약국 갔었다. 갑자기 추워져서 감기가 왔었겠지.

12월 3일 - 와이프 시내에서 친구들 약속있어서 갔다가 오후에 엑스코에서 하는 크리스마스 페어 가보기로 했다. 난 와이프 약속 끝나는 시간 맞춰서 엑스코로 바로 버스타고 감. 크리스마스 페어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먹고, 슬기로운 감빵생활 재방송 보고있었다. 전화기가 주머니에 없었는지, TV 한참 보다가 전화기 봤는데 큰누나 부재중 전화 1통과 엄마가 전화달라는 문자 한통이 들어와 있었다. 그거 보는 순간 금요일에 아빠 머리아프다고 한게 생각나며 병원이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다. 전화해보니 아빠가 병원 응급실에 가있다고 빨리오라고 했다.

옷입고 이닦고 준비하고 나가는데 그때부터 엄청 울었다. 내가 운전해도 되는지 와이프가 걱정했지만 일단 내가 차몰고 카톨릭대학병원으로 갔다. 2년전쯤 아빠가 통풍때문에 같은병원 응급실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일요일이었다. 그때는 처음이라 겁났고, 이번엔 정말 큰일인것 같아 정말 두려웠다. 대기실에 가니 막내 자형이 있었고, 보호자가 왔으니 잠깐 응급실 문 열어달라고 해서 들어갔더니 엄마랑 큰누나, 셋째누나가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있었다. 처음에 아빠를 못찾았는데, 아빠는 그때 이미 머리를 다 밀고 누워계셨다. 그때는 아빠 정신이 또렷한 편이었다. 키와 몸무게를 물으니 다 대답하셨다. 아빠랑 인사하고 의사 설명 들으러 가보니 뇌 수술인데, 뇌는 신체중에 가장 깨끗한 기관이라 수술중 감염의 우려가 있으며.. 등등의 이야기를 하고 보호자 싸인을 받았다. 절차 다 끝나고 아빠가 응급실 문 지나 수술실로 향하는데, 셋째누나가 엄청 울었고 나랑 엄마랑 큰누나는 잘하고 오시라면서 울지는 않았던것같다.

스텔라관 5층 중앙수술실에 10시쯤 들어가셨는데, 그때까지 가족들 모두 식사 안한 상황이라 식사하고 오시라고 하고 나는 와이프와 수술실 앞에서 기다렸다. 근처에서 식사 하고 오셨는데, 막내누나네는 보민이도 있고 출근문제도 있어서 집에 가기로 하고 내가 누나와 와이프를 태우고 집에 데려다주러 나갔다. 누나 집 내려주고 우리집 와서 담요와 생강차와 이것저것 준비해서 나는 다시 병원으로 갔다. 엄마 큰누나 큰자형 나 이렇게 네명이서 밤새 수술실 앞에서 기다렸다. 그 밤이 정말 추웠다. 내가 집, 차에 있던 담요들 다 가지고 가서 덮었는데도 정말 추웠다. 난 수술이 몇시간 걸리는지도 모르고 기다리고 있어서 곧 끝나나 곧 끝나나 했는데 결국 8시간 지나서 새벽 6시쯤 아빠가 나오셨다. 난 나오면서 의사가 뭐라고 하는말 있으면 녹음하려고 녹음기를 켜고 따라갔다. 엘리베이터가 엇갈려서 아빠는 다른쪽으로 가고 가족들은 중환자실 앞으로 가고 있었는데, 녹음 들어보니 엑스레이 찍고 중환자실로 간다는것 같았다. 그래서 나혼자 엑스레이 찍는곳으로 가보니 아빠가 엑스레이 찍고 있었다. 엑스레이 찍는 곳에 뉴스가 나오고 있었는데 속보라며 무슨 배가 침몰했다고 나오고 있었다. 엑스레이 찍고 나오시는데.. 의식은 없으시고 웃옷은 벗겨진채로 이불만 덮고 침대에 누워서 이동하는데.. 그 새벽은 왜그렇게 춥던지.. 이불만 덮고있는 아빠가 너무너무 추워보였다. 그리고 의식 없는 와중에 기침을 너무 고통스럽게 하시는 모습이 요즘도 문득문득 떠오른다. 다른 가족들은 못보고 나만 봤던 장면이라 더욱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것같다.

 

12월 4일 - 새벽에 수술실에서 나와 중환자실 들어가셨다. 중환자실이라는데가 면회시간이 정해져 있다는걸 그때 처음 알았다. 우선 오전에는 내가 병원에 있기로 하고 엄마는 집에 잠깐가고 큰누나는 출근했다. 나는 팀장님이랑 선근파트장님께 말씀드리고 휴가 내야되겠다고 하고, 중환자실 보호자 대기실에 누워있었는데, 시간이 정말 안갔다. 그 와중에 내가 경남으로 가니 부산으로 가니 하는 발령 소문들이 톡으로 막 오는데, 내 발령 소문인데도 남일처럼 느꼈던것같다. 11시 30분에 교직원 식당이 문연다고 해서 거기서 점심먹을려고 기다리는데 시간이 정말 안갔다. 가장 길었던 오전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겨우 11시 30분이 되어서 밥먹고 다시 대기실로 돌아오니 12시에 방송으로 주님의 기도가 나왔다. 기도를 듣는데 다시 눈물이 나왔다. 성당 다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외우고 있다는 자체가 그 순간에는 엄청난 위안이 되었다.

 

저날부터 중환자실에 2주정도 계시다가 일반병실로 옮기셔서 거기서도 2주정도 계시다가 퇴원하셨다. 큰 수술이었고 아빠 연세도 있으신데 정말 잘 이겨내셨다. 아마 내가 앞으로 살아가며 힘든 순간이 올때마다 그렇게 잘 이겨내신 아빠를 생각하며 나도 할 수 있다고 힘을 얻게되지 않을까. 중환자실 계신동안 거의 매일 아침에 와이프랑 같이 병원가서 면회하고 와이프 태워주고 나도 출근하는 생활을 했다. 인아도 고생 정말 많이 했다. 그 마음도 평생 갚아가며 살아가야겠지.

 

퇴원하신 직후 아빠는 다른사람이 된것처럼 순한 사람이 되었다. 한동안 기억이 오락가락 하셨다. 퇴원하시고 첫 목욕탕을 같이갔었는데 70세 이상은 할인이 된다하여 아빠가 70세 넘었다고 하니, 카운터 아저씨가 아빠한테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지 물었다. 그러자 아빠는 너무 태연하게 66세라고 대답하셔서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든 에피소드도 있다. 그렇게 한동안은 본인 나이도, 아들 회사도 잘 기억 못하셨는데 그와중에 인아의 직업은 기가막히게 기억을 하고 계셨다.

 

그렇게 춥던 겨울도 지나가고 봄이 왔다. 이제 아빠는 거의 회복을 다 하신것 같은데, 통풍때문에 계속 고생하고 계신다. 아빠를 돌봐야 하는 엄마도 물론 고생하고 계시고.

 

사는게 뭔지, 늙는게 뭔지, 또 죽는건 뭔지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고, 아빠곁을 지키는 엄마를 보며 부부가 함께 살아간다는건 무엇인가.. 이런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다. 두분 함께 살아오시면서 좋은일, 나쁜일 다 같이 겪었고, 사랑하는 만큼 미워하는 마음도 많이 있었을텐데 결국 곁을 지키는건 부부구나 하는 생각.

 

봄의 새싹들을 보며, 자연의 순환을 보며, 아빠도 다시 회복하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지금까지 잘해오신만큼 앞으로도 잘 이겨내시리라. 아빠,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오래오래 저희와 함께 해주세요.